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메이드 인 코리아'가 공개 직후부터 화제입니다. 저는 어릴 적 1970년대 서울 골목에서 자랐는데, 드라마 속 장면들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실제 냄새처럼 와 닿았습니다. 그 시절 중앙정보부라는 이름은 어른들 사이에서 입 밖에 꺼내기 어려운 단어였고, 지금 이 드라마는 그 시대를 꽤 정직하게 건드리고 있습니다.
현빈이 연기하는 백기태, 무엇을 욕망하는가
드라마의 중심에는 중앙정보부 부산지부 정복과 과장 백기태가 있습니다. 표면상 국가를 위해 일하는 정보요원이지만, 실제로 그가 추구하는 것은 권력의 정점입니다. "힘 있는 놈이 세상을 바꾼다"는 그의 신념은 단순한 악인의 대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 시대를 살아간 수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품었던 욕망의 민낯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백기태가 동생에게 건네는 말이었습니다. "부모도 없고 백도 없으면 진짜 서러운 세상인데, 돈 있고 힘 있으면 또 금방 살만해지는 게 웃기다니까." 이 대사는 허구가 아닙니다. 저도 어린 시절 아버지가 신문을 접으며 낮게 중얼거리던 그 목소리에서 똑같은 체념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여기서 드라마가 주목하는 것은 단순한 개인의 탐욕이 아닙니다. 수직적 위계 구조, 즉 상명하복이 당연시되던 시대에서 권력은 어떻게 사유화되는가 하는 구조적 질문입니다. 수직적 위계 구조란 명령과 복종이 위아래로만 흐르는 조직 체계를 말하는데, 이런 구조 안에서는 윗선의 부패를 아랫사람이 문제 삼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백기태는 그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고, 그것을 이용하는 데 탁월합니다.
정우성이 연기하는 장건영, 공안수사의 민낯
검사 장건영은 드라마에서 공안수사(公安搜査)를 주도하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공안수사란 국가 안보와 관련된 범죄를 수사하는 특수 영역으로, 1970년대에는 중앙정보부가 이를 사실상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건영은 이 금기의 영역을 정면으로 건드립니다.
"중앙정보부 건드리지 말라고. 개들하고 각세면 우리만 피본다고." 선배 검사가 건네는 이 경고는 당시 검찰의 실제 위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법 위에 군림하던 중앙정보부는 검찰 사무실에 도청 장치를 심고, 수사 기록을 무단으로 열람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자행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드라마니까 어느 정도 극화가 되어 있겠지 싶었는데, 실제 역사 기록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드라마가 절제된 표현을 썼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1970년대 한국의 국가권력 남용 실태는 이미 국가인권위원회와 과거사위원회 조사 결과를 통해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실입니다(출처: 국가인권위원회).
장건영이 만재파 수사에서 보여주는 태도, 즉 윗선의 압력에도 굽히지 않는 그 광기에 가까운 집념은, 그 시대에 그런 검사가 실제로 얼마나 드물었는지를 역으로 증명합니다.
1970년대 서울이라는 시대적 배경, 얼마나 정확한가
드라마의 배경이 된 1970년대 한국은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維新體制) 하에 있었습니다. 유신체제란 1972년 선포된 헌법 개정으로, 대통령의 임기와 권한을 사실상 무제한으로 확대한 권위주의적 통치 체계를 말합니다. 이 시기 중앙정보부는 정치 사찰, 야당 감시, 언론 통제의 핵심 기관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 시대를 다룬 콘텐츠 중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처럼 시대의 질감을 시각적으로 재현한 작품은 흔치 않습니다. 우민호 감독이 밝혔듯, 촬영 과정에서 백기태의 씬은 차갑고 계산된 화면으로, 장건영의 씬은 거칠고 분방한 질감으로 대조적으로 찍었다는 점이 실제로 화면에서 느껴집니다.
특히 1970년 실제 발생한 일본 항공기 하이재킹 사건을 드라마 초반 시퀀스로 배치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하이재킹(hijacking)이란 항공기를 무력으로 납치하여 목적지를 강제 변경하는 범죄 행위를 말하는데, 1970년 당시 일본은 항공 보안 검색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실제로 일본 항공 보안법 제정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드라마는 이 실화를 배경으로 백기태와 장건영이라는 두 인물의 서사를 자연스럽게 연결합니다.
1970년대 한국 현대사를 드라마로 이해할 때 참고할 수 있는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유신체제(1972): 대통령 종신집권을 가능하게 한 헌법 체계. 언론·집회의 자유를 사실상 박탈
- 중앙정보부: 국내외 정보 수집, 정치 공작, 사법 개입까지 수행한 초헌법적 기관
- 하이재킹 방지법: 1970년 요도호 사건 이후 일본에서 제정된 항공 보안 관련 법제
- 공안수사 체계: 중앙정보부와 검찰의 수사권 충돌이 상시적으로 발생하던 구조
당시 중앙정보부 요원의 수는 정확히 공개된 바 없으나, 국가기록원 자료에 따르면 유신체제 기간 중 정치적 목적의 수사와 체포가 급격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납니다(출처: 국가기록원).
드라마가 던지는 질문,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한가
드라마 속 백기태는 "애국하러 갔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대사 하나가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합니다. 권력을 사유화하려는 욕망이 언제나 공공의 언어로 포장된다는 사실, 그것이 1970년대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지금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역사 드라마를 볼 때 많은 분들이 "그 시절은 저랬구나" 하고 거리를 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불편함을 느낀다면, 그 불편함이 정확히 맞게 작동하고 있는 겁니다. 국가 권력이 개인의 이익을 위해 작동하는 구조, 권력 기관이 수사 기관을 압박하는 메커니즘은 형태만 바뀌었을 뿐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조혜정 배우가 연기하는 인물처럼, 권력의 중심부에서 은밀하게 힘을 흔드는 동시에 그 안에서 공포와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캐릭터들이 회차마다 확장되면서 드라마의 판이 넓어집니다. 이것이 단순히 현빈·정우성의 대결 구도를 넘어서 이 작품이 오래 기억될 이유입니다.
역사를 드라마로 소비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됩니다. 중앙정보부는 사라졌지만 국가 권력을 사유화하려는 욕망은 사라지지 않았고, 그것에 맞서는 장건영 같은 인간이 시대마다 필요하다는 것. 디즈니 플러스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를 보신다면, 단순한 시대극 감상을 넘어 그 질문을 함께 붙들고 가시길 권합니다.